[월간 안수빈] 24년 1분기
2년전 NFT로 시작했던 블록체인 여정이 벌써 2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성인 이후에 3년~4년마다 나의 포지션을 조금씩 바꿨으며, 특히 2년쯤 되는 주기에 가장 큰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1년 차에는 "배움의 즐거움", 2년 차에는 "가시화되는 성과의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면, 보통 3년차 정도에 "업계에 줄 수 있는 임팩트"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작은 시야로 보면 운 좋게 성과가 잘 나와서 이런 건방진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이번 1분기는 블록체인/크립토 입문 이후 가장 고민이 많았던 3개월이었다.
📜 나의 리서치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투자 회사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 리서처였던 나
그 전까지는 크립토의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사내에서도 내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여 약 1년간 투자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리서치를 하며 2023년 말부터 크립토 시장의 회복을 느꼈고,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번 분기의 투자는 "돈을 크게 벌겠다"가 주된 목표는 아니었다. 크게 2가지였다.
- 리서치의 결과와 투자를 연결시킬 수 있을 때, 좋은 리서처이자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라 생각했다. 다만 작년에는 브랜딩 차원에서의 성과에 더 가까웠으며, 올해는 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적은 시드지만 본인의 논리가 시장에서 통하는지에 대해 검증 과정이 필요했다.
- 당장 현실적으로 "졸업" 규모의 돈을 벌 수 있다 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나도 대응을 해보고 싶고 사람들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다"에 가까웠다. (1) CEX 선물은 무엇이고, (2) DeFi Farming은 어떻게하며, (3) 에어드랍 전략은 어떤 게 있고, (4) DEX 거래는 어떻게 하며, (5) IDO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며, (6) 밈코인은 어떻게 거래하는지 (7) 체인 별로 UX가 어떻게 다른지 (8) 아비트라지는 어떻게 하는지 등 블록체인 투자에서 늦게 시작한 만큼 모르는 게 너무 많았기에 이에 대한 경험부터 필요했다. skin-in-the-game으로 이 시장에 참가하는 시기는 지금이야 말로 적기라고 느꼈다.
운이 좋게도 시장은 반등을 했으며 실험을 하며 꽤 많이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상승율보다는 살짝 더 많은 수익율을 기록하였다. 작은 시드라 아쉬울 따름이다. 투자는 많이 안다고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많이 알면 점점 리스크 매니징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많이 벌려면 여기에다 흔히 말하는 "야수의 심장"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난 아직 "초식동물의 심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잃을 때마다 배웠다
전체적으로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자산의 대다수가 암호화폐로 구성되어 언제 다시 사라져도 무방하며 이를 "수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수익에서 오는 성취감 외에도 다양한 성과가 있다. 꼭 투자 외에도 ETHDenver 등의 이벤트 참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투자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은 결론이다.
- 목표했던 다양한 직관적인 투자를 실험해봤다. 가장 성공적인 전략은 알파를 찾아 DEX에서 초기에 투자하는 결과가 가장 좋았다. 특히 밈코인이 재밌었는데 결론적으로 밈코인으로는 다 잃었다. 정확히 금액까지 공유할 수 있는데 $2000 -> $12000 -> $200로 끝났다. 물론 아직 들고 있으니 끝은 아니지만 하여튼 도박으로 다 날린 기분이다. 아직 아비트라지 등 개발이 필요하거나 조금 로직이 복잡한 것에 대해서는 시도해보지 못했는데 더 장이 좋아지기 전에 빠르게 방법론이라도 실험해보는 것이 목표이다.
- 빌더, 엔지니어, 리서처, 투자사, 리테일 투자자의 중간 포지션으로 더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이 가지는 오해의 근원, 그리고 투자사의 일원이자 나름의 인지도를 가진 리서처로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 연장선으로 지금까지 내 리서치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많이 느꼈다. 데이터로 수 많은 대시보드를 만들었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중요한 정보에서 빈틈"에 대해 인지했다. 특히나 PnL, 고래, 자금 흐름 등 더 중요한 데이터는 놓치고 있었다. 이제 하나씩 보완해야지.
- 투자건을 찾다보며 알파를 찾다보니 선두적인 리서치를 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EigenLayer의 파생으로 등장한 LRT 대시보드이다. 덕분에 Bloomberg에 이름이 올라가는 영광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알파를 찾다보니 신규 프로젝트에 대해 빠르게 대시보드를 만들었고, 재단 또는 파운더를 통해 5개 이상의 대시보드가 리트윗 되었으니 회사 및 개인 브랜드 차원에서는 큰 이득이었다. 참고로 현재도 전체 팀 1위이고 최근 7000⭐를 달성했다.
- 투자 원칙에 대해 조금씩 감이 오고 있다. 일단 지금의 가장 큰 1원칙은 "선물거래 금지"이다. 오히려 과도한 확신 x 고배율 x 과욕은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알파를 통해 얻은 성과를 무너뜨렸다. 다행히 자산은 우상향을 그렸지만, 결국 언젠가 더 크게 당하기 전에 멈춰야 할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100만원은 나중의 1억, 1000만원은 10억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첫 청산의 상처는 꽤 오랫동안 흉터로 남을 것 같다.
- 수익의 일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전히 다수)는 과감하게 투자해보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자산이 크립토에 있으며 비트코인이 아니라는 점(*비트코인도 하이리스크 자산이다)에서 하이리스크 자산이다. 그러나 과감한 투자에서
$PANDORA
,$ASTX
,$DEGEN
과 같은 좋은 성과들이 나와 다행히 자신감을 계속 찾을 수 있다. - 점점 다양한 사기행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사기의 수법은 점점 고도화될 것이다. 언제나 성급하면 다친다.
- "비트코인이 진리다."에 대해 뒤늦게라도 깨달았다. 진짜 이 업계에 있을 것 아니고 암호화폐를 투자로만 산다면 비트코인 DCA(주기적으로 같은 금액만큼의 비트코인을 사는 것)가 리스크가 그나마 적은 투자법이다.
조금씩은 투자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는 여전히 확인하지 못했기에 여러 간접 경험과 논리들을 만들어보고 있다. 그래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공부와 연구는 매우 중요하고, 언젠가 다양한 시도를 하다보면 결국 부는 찾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변의 여러 수익 사례를 보면 부럽다.
🇺🇸 ETHDenver
배울 건 산더미
이번에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ETHDenver 출장(비행기 포함, 2/26~3/6)을 다녀왔다. 올해 초는 데이터 작업과 리서치에 꽤나 많은 시간을 썼고, 그 과정에서 만든 대시보드를 통해 정말 다양한 회사의 쉴링을 받았던 1분기라 설렘 가득으로 출발했다. 작년 파리와 리스본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장기 출장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출장에서는 정말 다양한 것을 배운다. 특히 이번에는 단순히 기술과 문화 외에도 비즈니스 매너에 대해 더 많이 느꼈다. 이번 출장은 미국에 있는 투자팀 두 분과 한국 오피스에서 나 이렇게 3명이서 미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의 대화 진행, 전달력 등 물 흐르듯한 진행에 감탄했다. (1) 기술 중심의 업계이자 (2) 막 시작한 파운더들이 많고 (3) 오히려 chill함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시장이며 (4) 특히 엔지니어와 리서처인 나는 점점 비즈니스-스러운 미팅을 접할 일이 적은데, 정말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물흐르듯이 미팅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깊었다. 영어도, 그리고 대화의 템포도 아직 배울 게 많다.
이 외에도 지난 출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시 만나며 해외 친구들과 어울리며 문화적으로도 많이 배웠고, 기술적인 영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이제 일상에서 영어는 심리적 허들이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Q2에도 영어는 꾸준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잔뜩 가지고 왔다.
참고로 덴버에서 날마다 후기를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했었다. 궁금한 분들은 아래 토글 링크들 클릭.
내가 그리던 모습에 어느 정도는 잘 가고 있나보다
이번 출장은 약 20~30개 정도의 미팅을 잡고 출발했다. 개별팀이나 개발자를 만나기 보다는 메인넷 등 인프라 관련 대형 프로젝트를 만나 그들에게 생태계 연결을 제안받는 전략이었다. 다행히 여러 미팅에서 기술적인 부분과 다양한 업계 동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기여할 부분들이 많았다. 지난 1년 반 정도 좋은 환경에서 리서치에 집중할 수 있었어서 그런지 확실히 어디에서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개발에 몰입이 되어 있으면 시장에 대해 태클을 걸고 싶고, 시장에만 집중하면 개발의 빈틈을 보려고 노력하는 "청개구리" 기질은 이 시장에서도 꽤나 잘 먹히는 것 같다.
이벤트 참여도 꽤 많이 했고 데이터 분석 회사들의 이벤트도 몇 개 참여했는데, Dune, Kaito AI, Artemis, Token Terminal, Zettablock 등 데이터 회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1년 반의 성과가 점점 보이고 있다. 어릴 때부터 T자형 인재에 대해서 꿈꿔왔는데 이제 소문자 t는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자랑한 김에)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최근 존경하는 리서처/개발자이자 아는 동생 R을 행사에서 만나 그의 지인 A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 나는 얘(R) 때문에 알고리즘 그만뒀어요. 이 친구가 너무 잘해서 벽이 느껴졌거든요. (참고로 나는 이 친구는 모두가 인정하는 인재다. 솔직히 말해서 천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A: 에이 수빈님도 잘 하시잖아요. 기만하지 마세요.
나: 아니 못하는 건 아닌데, 저는 근데 아무리 열심히해도 저 친구만큼은 못할 것 같더라구요.
R: 형은 근데 데이터에서는 정말 잘하잖아 난 데이터는 아에 몰라. (A에게) 근데 5점만점에 5점을 하는 것도 잘하는 건데, 이 형(나)은 진짜 다양한 것을 4점 이상으로 해서 정말 사람 모으는 것에 소질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형이 만드는 그룹에는 특히나 "진짜"들의 비율이 높아요.
정말 존경하는 사람에게 듣는 정말 인상깊은 내용이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모습도 그런 것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팟캐스트 출현?
비슷한 시기에 업계에서 활동하는 주혁님과 덴버에서 팟캐스트도 촬영했다. 좋아하는 리서처이자, 좋아하는 유튜버인데, 외국 출장에서 내가 참여한다? 정말 즐거웠던 촬영이었다.
Special Thanks to 주혁
혼란, 혼란, 혼란
배운 것이 정말 많지만, 궁극적으로 출장의 마지막에 내 상태는 사실 혼돈에 가까웠다.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구분하지 않고 마치 "블루투스 샤워기" 같은 아이디어들이나, 용어로 현혹하는 마치 "제로 소주" 같은 프로젝트도 많았다. VC나 영향력있는 개인들 또한 필요 이상의 지지도 많았다. 마케팅은 꼭 크립토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나 신기술은 거품과 함께 한다. 거품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이 관심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은 결국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까? 처음에는 화가 먼저 났지만, 점점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블루투스 샤워기"는 지금의 기술 문제일 뿐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진짜 전통주"가 옆동네에서 "제로 무늬만 전통주"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면 차라리 "진짜 제로 전통주"라고 홍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내가 나서서 "제로"를 지지하면 이건 맞는건가? "제로 소주"도 플라시보로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닐까?
설렜던 마음으로 출발했던 출장은 "내가 무엇을 알고 떠드는 게 맞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귀국으로 마무리지었다.
⚖️ 2분기를 시작하며: 삶의 균형
개복치
엎친데 덮친격으로 출장 이후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버렸다. 하루 평균 미팅이 3개~4개에 이벤트 참여까지 하다보니 출장에서 일정이 있던 7일 동안은 저녁을 먹은 날이 하루밖에 없었다. 아침에 미팅을 시작하면, 저녁도 안먹고 잠들어 새벽에 깼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미팅 전까지 오늘 만날 팀을 리서치하고 그 일정의 반복이었다. 출장은 정말 재밌지만 체력 관리는 확실히 어렵다. 다른 업계 사람들은 거의 세계일주를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나만 개복치인가 싶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큰 고민으로 매일 밤에 리서치의 압박에서 생활 및 수면 패턴도 완전히 깨져버렸다. 밤 새는 것에 대해 익숙한 편이긴 한데 즐거움이 아닌 불안함에 새다보니 삶의 만족감이 높지 않았다. 누군가 시킨 게 아니다보니 말릴 사람도 없었고 혼자만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차곡차곡 회복중
다행히도 운동을 통해 점점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일단은 몸이라도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하더라. 머리에 잡생각이 많은 게 문제였는지 유산소 중에서도 "천국의 계단" 스텝밀이 가장 즐겁다. 이번 기회에 코로나 시절의 건강했던 몸을 다시 만들어볼까 한다.
리서치 패턴도 조금 개선했다. 기존에는 시장 전략 60과 기술 40으로 균형을 맞췄다면 지금은 시장 전략 25과 기술 75으로 보고 있다. 처음 리서치하는 마음으로 기본적인 백서나 기술 등을 공부하고 있다. 조만간 기술 아티클도 하나씩 써볼 예정이다.
그 외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1분기 일들
- 투자 관련해서 2번째 딜을 마무리했다. 문서 작업부터 다양한 조율 등 배운 게 정말 많은 딜이다. 정말 똑똑한 팀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잘되면 좋겠다.
- Naver AI Boostcamp 7기 촬영 완료: 6기까지 내용에서 일부 리뉴얼이 되며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직까지 알고리즘, AI, 데이터 시각화 등으로 불러주는 곳이 많아 다행이다.
- (Buidl Asia) BNB Seoul 패널 참여: 영어 패널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작년에 비하면 훨씬 편했다. 그래도 함께 패널했던 크래프톤와 네오위즈 패널분들에 비하면 내 영어가 좀 아쉬웠기에 더 열심히 해야겠지.
- 텔레그램 채널은 3300명, X(구 트위터)는 25000명을 달성했다. 신기한게 아직도 AI 시절의 페이스북 채널보다 텔레그램 채널 구독자가 적다.
- 취미로 위스키를 시작했다. 유명한 중저가 라인부터 하나씩 맛보며 공부하고 있다. 뭔가 유의미한 결론으로 이어보고 싶은데 뭐가 있을지 고민 중이다.
- 조그마한 건강상 이슈. 이건 현재 진행형이라 Q2에 마저 쓸 예정.
바쁜 2분기가 되겠지만, 또 그만큼 돌이켜봤을 때 멋진 날들이 될 것 같다.
다들 2분기에도 행복한 순간들로 더 가득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