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재미" 관점에서 보는 NFT
지난 1월 Wordle이라는 단순한 단어 퍼즐 게임을 뉴욕타임즈가 100만 달러 이상에 인수했습니다. 6번의 기회로 5자의 영단어를 맞추는 단순한 퍼즐은 SNS를 통해 퍼지며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최근 Vampire Survivors라는 게임이 게임 유튜버를 장악했습니다. 도트 기반에다 토이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이 게임 또한 약 200만장~50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왜 이런 단순한 게임들이 이 유행을 타고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 든 연장선에 저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각자의 삶에서 재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 재미를 전파할 수 있을까?
재미와 관련하여 하나씩 작성해보려고 하며, 이번 글에서는 이론적으로 놀이와 재미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과 함께 NFT 시장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요한 하우징거의 호모 루덴스
재미의 시작은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애기부터 무의식적으로 재미를 느낍니다. "이게 재미있으니까 재밌어!"는 없습니다. 물론 놀이가 타인의 제안을 통해 시작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 해보니까 재밌네."로 놀이가 지속됩니다.
놀이의 근본은 네덜란드의 요한 하우징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 제목인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인간의 본질은 유희이며, 이를 통해 문화 등이 발전해왔다는 인간관입니다. 핵심만 살펴보면, 요한 하우징거는 놀이에 대해 크게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이다.
-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다.
-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
- 질서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된다.
- 경쟁적 요소, 즉 남보다 뛰어나려는 충동이 강하다.
가위바위보만 하더라도 이 놀이의 정의에 충족합니다.
- 우선순위 정하기 등 특정 순간에 진행하며,
-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비기는 룰이 명확하다.
- 또한 승패를 통해 어떤 결과(예시. 이마 때리기)를 얻고자 하며,
- 릴레이 가위바위보 등 가위바위보 룰에서 연장선도 다양하고,
- 결국에는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행하는 놀이는 대다수 이런 포맷을 따르고 있습니다.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을 살펴봅시다.
2. 로제 카이와의 놀이의 4대 요소
프랑스 학자 로제 카이와는 호모 루덴스의 이론을 발전시켜 "놀이와 인간"를 집필했습니다. 이 책에서 로제 카이와는 놀이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 자유로운 활동 : 놀이하는 자가 강요당하지 않는다.
- 분리된 활동 : 처음부터 정해진 명확한 공간과 시간의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다.
- 확정되어 있지 않은 활동 : 게임의 전개와 결과가 결정되어 있지 않는다.
- 비생산적인 활동 : 어떠한 새로운 요소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 규칙이 있는 활동 : 약속에 따른다.
- 허구적인 활동 : 이차적인 현실 또는 명백한 비현실이다.
그리고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4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아곤(Agon, 경쟁): 아곤은 놀이의 주체와 객체간의 경쟁을 의미하고, 승리를 통한 성취감을 의미합니다. 꼭 상대방이 아니더라도 게임 내에 원했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 미미크리(Mimicry, 역할): 미미크리는 역할놀이를 의미한다. 직책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놀이에서 할 수 있습니다. 직업, 역할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 알레아(Alea, 행운): 알레아는 행운의 요소에 해당한다. 자기 자신의 노력을 뛰어 넘는 소득에 대한 기대 및 즐거움입니다. 가챠(Gacha) 등의 랜덤 박스류를 포함하여, 특정 몬스터에서만 아이템이 나오는 등의 모든 행운이 이에 포함됩니다.
- 일링크스(Ilinx, 현기증, 몰아): 일링크스는 현기증, 몰아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가장 큰 흥미 요소이며 가장 큰 동기 부여 요소가 되곤 한다.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했을 때, 느껴지는 현기증이 이에 해당합니다. 카타르시스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와도 연결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최근 NFT 시장의 성공 케이스에서 위의 항목을 잘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각 NFT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진 않습니다. 각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아곤-크립토펑크: NFT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공통점 속에서 차별점. 즉 디지털 자부심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인정 요소입니다. PFP(Profile Picture) 프로젝트 중 크립토펑크는 이런 NFT 인정 요소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표현의 측면에서는 하나의 역할(미미크리)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아곤-엑시인피니티: 경쟁을 통한 성취감은 게임과 직결되어 있으며, 자연스럽게 P2E 개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P2E는 Play to Earn의 약자로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엑시인피니트에서는 NFT인 몬스터를 키우고, 이를 통해 경쟁합니다. SLP라는 아이템이자 코인으로 돈을 버는데 꽤 괜찮은 시스템입니다. 기존 P2P 전략 게임을 선호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 미미크리-BAYC: 지루해진 유인 요트 클럽(Bored Ape Yacht Club)은 대표적인 역할놀이입니다. 암호화폐로 너무 부자가 되버려 모든게 지루해져 버린 원숭이라는 컨셉부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BAYC 소유자는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통해 더 풍부해진 스토리를 바탕으로 커뮤니티가 커지고, 커뮤니티가 커지는만큼 각 NFT도 가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할놀이는 가상의 존재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재미와 소속감에서 오는 재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알레아-크립토키티: 지금은 시들었지만 NFT 원조격에 가까운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는 이더리움 기반의 온라인 게임으로 가상의 고양이를 키우는 게임입니다. 고양이 캐릭터를 수집하고 교배시켜 새로운 고양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각 고양이는 256비트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 유전자에 따라 초콜릿, 크레이지, 얼음 등의 속성이 발현되어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2^256개의 매우 많지만 결국엔 유한한 개수의 고양이가 나타나기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양이가 생깁니다. 그래서 인기있는 유전자를 가진 고양이를 사서 교배하고, 좋은 고양이가 나오면 파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유전자를 이용하여 원하는 고양이를 만들려는 시도가 매우 알레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알레아-랜덤 박스: 최근 다수 NFT 프로젝트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블랙박스로 숨겨져있습니다. 뽑기와 유사한 느낌인데 좋은 마케팅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링크스-NFT Bank: 일링크스를 명확한 사례와 연결하긴 어렵지만 큐레이터가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젠 NFT 생산자 뿐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원하는 NFT를 수집하여 이를 큐레이팅 해주는 것도 NFT 시장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 NFT 가치를 예측하는 기업 NFT Bank은 좋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투기성도 인정하지만 투기성도 하나의 몰입을 줄 수 있는 요소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니꼴 라자로의 재미의 4요소 (4 Keys to Fun)
조금 게임 쪽에 가깝지만 게이미케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 또 있습니다. XEODesign의 설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니꼴 라자로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재미요소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을 PX(Play Experience) Designer라고 표현하며 이 프레임 워크로 다양한 회사들과 협업하며 PX를 높이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4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Hard Fun : 정확한 목표 달성에 대한 성취감
- Easy Fun : 호기심에서 나오는 재미와 궁금증 욕구 충족에 대한 재미
- Serious Fun : 의미 있는 일에 대한 만족감과 재미
- People Fun : 실제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나오는 재미와 이를 통한 갈등해소 만족감
이전과는 다르게 People Fun과 Serious Fun이라는 부분을 하나의 요소로 세웠다는 점이 이전과 다릅니다. 이제 "재미는 단순히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공유와 진정성을 고려한 것이 재미이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NFT도 마찬가지로 People Fun과 Serious Fun이 중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Serious Fun에 반하는 부분이 있다면, 일부 입장에서 반대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미의 NFT 진출 반대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사회적 의미를 고려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커뮤니티가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재미를 만드는 환경을 더 분석해보면 NFT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몇 가지 공통점을 뽑을 수 있습니다. 일부 기사(forbes, 기사 등)와 여러 성공사례에서 뽑아내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비전: 해당 NFT에서 보여줄 가치와 그것에 대한 향후 방향성 (로드맵)
- 신뢰: 해당 NFT 시스템의 개발팀과 대표. 그리고 이에 따른 소비자의 지지
- 가치: 작품으로써 가치가 있는가. 희소성을 통한 가치 등이 존재.
- 커뮤니티: 비전 공유를 통한 문화 생성
- 재미: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 랜덤성 or 게임 등
재미는 안전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했을 때, 더 탄탄하게 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DAO가 NFT와 함께 핫한 키워드로 뜨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DAO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NFT 국내 성공 사례
국내에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례에 대해 또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zipcy님의 SuperNormal이 있습니다. 개별 작품이 미적으로 소장 가치가 있으며, 작품이 담고자 하는 철학도 많은 커뮤니티 참여자가 동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zipcy 작가님은 이미 70만 팔로워를 가진 일러스트레이터이고, 또한 개발진 또한 코인베이스 수석개발자 최유진님이 함께하여 더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저는 zipcy 작가님을 2014년 정도에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는데, 이렇게 더 뜨실줄은 몰랐네요.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말이 정답입니다.)
최근 커뮤니티와 함께 다양한 확장을 하고 있는데 기대가 되는 작가님과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인스타그램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계시니 관심있는 분들은 팔로우를 추천합니다. (팬심가득...)
"슈퍼노멀(super normal)이라는 단어 자체가 특별함, 비범함이라는 의미잖아요. 과거에는 평범한 다수가 경멸하던 스타일이 지금은 대세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평범'이라는 기준이 늘 변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두가 그 자체로 특별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어요. "
출처 : 코인데스크 코리아, zipcy 작가님 인터뷰
한편 마케팅을 할 거면 이렇게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팀도 있습니다. 바로 메타콩즈입니다. 메타콩즈는 멋쟁이사자처럼의 이두희님이 리딩하는 프로젝트로 유명합니다. 기존 흥행 NFT 콘텐츠 아이디어(세계관 확장등)를 잘 차용했습니다. 또한 함께 진행하고 있는 P2E인 실타래도 기대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두희님의 네임밸류+훌륭한 개발진을 통해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좋은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김유현님, 이종범 작가님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있습니다.
초반에는 선홍보를 보면 살짝 어설퍼보이기도 했으나, 로드맵도 체계적이고 최근 행보를 보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개발하여 더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타래 리빌 당시 이슈도 있었으나, 잘 지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실타래의 현재 P2E시스템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실타래가 진행하는 메인 게임은 카드 기반 게임에 약간 "더 지니어스" 스타일의 게임처럼 보이는데, "사용자가 폭넓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인가? 접근성이 좋은 게임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쉽게 즐기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은 확실한데 앞으로 더 개선해나가길 바랍니다. (물론 현재 1위 스플린터랜드 게임은 잘되고 있는데, 더 살펴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마치며
저는 Web3 키워드가 마음에 들지도 않고, "NFT가 혁신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드 수집, 캐릭터 수집, 게임 아이템 판매 등 생각해보면 NFT가 없었을 때도 충분히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블록체인 덕분에 더 쉬워지긴 했습니다.
NFT는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작품의 원본에 대한 보장을 "전자영수증"의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매니아층에게 중요한 원본 수집의 재미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스캠"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잘만 기획하면 좋은 아이템이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리니지 "집행검"같은 고가의 온라인 아이템 등에 활용하면 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죠.
다만 최근 국내외 NFT를 보면 방향성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 소비자 중심, 콘텐츠 중심보다 "NFT를 위한 NFT"가 더 많다는 느낌입니다. NFT 공모전? 과연 누구를 위한 공모전 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굳이 모든 걸 함께 붙이는 느낌도 불편합니다. NFT+@, Metaverse+@가 참 많은데 최근에는 Web3, 메타버스 등 키워드 장사가 너무 많아보입니다.
한발짝 뒤로 물러나 Wordle, Vampire Survivors만 보더라도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콘텐츠 그 자체이지, Web3같은 키워드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더 좋은 스토리텔링, 소설, 드라마를 만드는 인재가 더 보상받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NFT의 시대가 좋아보입니다. 앞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겠네요.
앞으로 재미, 가치, 신뢰를 바탕으로 멋진 NFT, Metaverse 시장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추가로...
탈중앙화 어플의 현황은 다음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보다 P2E시장이 커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다만 게임들의 퀄리티가 모바일 게임 초기의 형태가 다수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기존 대형 게임사들이 자신들의 IP를 바탕으로 어떤 "게임성"있는 게임을 만들어 주면 더 멋진 P2E시장이 열릴 것 같습니다.
NFT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 법적 취약점, 접근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취약점이 보이긴 합니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NFT 시장에 대한 분석과 "탈중앙화"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뤄볼 예정입니다.
Reference
- 재미의 본질, 김선진 저
- 호모루덴스, 요한 하우징거
- 놀이와 인간, 로제 카이와
- 4가지 재미요소(4 Keys to Fun)로 보는 게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 해시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