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야마구치 슈 저 / 김윤경 옮김, mumentum)를 읽고, 2023.04.21

시작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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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강남역 교보문고에서 제목과 목차에 이끌려 산 책입니다. 도입부만 읽고 이사하며 완독을 못했는데, 오랜만에 손에 걸려 완독했네요.

저는 고민이 많은 편입니다. 종종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편인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저만의 육하원칙이 채워지지 않으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는 합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거나 싫은 건 아닙니다. 종종 새로운 경로로 저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철학은 그 답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수단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철학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근본이 되는 철학서적을 깊게 읽지는 않습니다. 핵심이 되는 이념에 대한 타인의 해석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 책은 그런 저에게 알맞는 책이었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그리고 식상하지도 않은 책이었네요. 지난 1분기에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은 또 다른 느낌으로 저에게 환기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서적을 읽어야 하는가?

모든 철학자의 생각은 두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p.38)

책에서는 철학자의 생각을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눕니다. 1) 물음의 종류와 2) 배움의 종류입니다. 물음의 종류는 'What'과 'How'가 주를 이룹니다.

  •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가?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물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는 시시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만물의 기원이 물이다" 와 같은 내용은 아웃풋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철학자의 What에 대한 질문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요?

저자는 여기서 2번째 축인 배움의 종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배움의 종류는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프로세스로부터의 배움
  • 아웃풋으로부터의 배움

아웃풋에서 배울 것은 생각보다 없는 철학 서적은 많습니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예시를 듭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

위 문장은 '무엇이 옳고, 현실인지 의심한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사고하는 나의 정신이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라는 뜻이지만, 일반인에게 이 아웃풋이 주는 감동은 크게 없습니다. 이 문장을 더 깊게 배우기 위해서는 데카르트가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와 고찰 과정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이 책은  이런 두 축을 바탕으로 50가지 철학자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읽을 때마다 읽어보고 싶고 더 찾아보고 싶은 철학자와 철학 서적이 많았는데, 그 중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7개 파트에 대해 소개합니다.

인상깊었던 파트 Top 7

👀
해당 내용은 책 서술에 따른 순서입니다. 정리하며 다시 책을 쭉 봤는데 50개 모두 주옥같은 내용이네요. 책 강력 추천합니다.

문구, 개념, 사고 방식 등 다양한 방식에서 좋아하는 파트를 기록해두었습니다.

[01] 르상티망 / 프리드리히 니체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으로 시기심이지만 우리가 시기심으로 느끼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마치 <여우와 신 포도>에서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는 생각으로 바꾸면서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르상티망의 반응이다.

이런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한다.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꾼다.

명품을 예시로 든다면 (1) 명품이 부러워 명품을 사거나 (2) "명품 같은 것은 필요없어~"라고 말하는 사례가 있다. 이 두 가지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내 행동이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 판단에 종속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언어습관을 돌아보며 나도 꽤 많은 르상티망에 사로 잡혀있었지는 않을까 되돌아보는 주제였다.

[16] 악마의 대변인 / 존 스튜어트 밀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악마의 대변인이란 다수파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개념은 집단 문제 해결 능력과 연관이 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피그스만 침공 사건', '베트남 전쟁' 등 고학력 엘리트가 모여 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한 다수의 사례를 연구한 결과,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고 한다. 즉 집단의 문제 해결 능력은 동질성과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본인의 저서 <자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의견이 어떠한 반론에도 논박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와, 애초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목적으로 미리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

일부 동의하나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속된 말로 "무지성" 반박 논리가 존재하며, 이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리소스 관리 차원에서 낭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론>에서 아마 상정하고 있는 "최소한 수긍할 수 있는 논리"라면 해당 프로세스는 논리 및 조직 개선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론 >의 해당 내용은 변증법(정반합을 통한 개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직 차원에서도 이를 "필수 프로세스"로 시스템화 한다면 어떨까? 이 부분은 아래 [23] 권력 거리와 함께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18] 변화 과정 / 쿠르트 레빈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쿠르트 레빈은 그룹다이내믹스(group dynamics, 집답 생활에서 구성원의 행동 특성을 규정하는 법칙과 요인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다룬 심리학자이다. 그 중 레빈이 제창한 '해동-혼란-재동결' 모델은 다음과 같다.

  • 1단계. 해동(unfreezing): 지금까지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준비한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는 "왜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는 안 되는 걸까?".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면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해 설득이 아닌 공감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 2단계. 혼란(moving): 예전의 견해, 사고, 프로세스 등이 불필요해지며 혼동이 야기된다. "역시 예전 방식이 좋았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 단계를 잘 극복하려면 변화를 주도하는 측에서 구성원들을 실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지원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3단계. 재동결(refreezing):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이뤄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단계로,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느껴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지하려는 항상성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 단계에서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실제로 성과를 일궈 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를 주도하는 측이 실제 성과를 발표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기능이나 프로세스 획득에 포상을 주는 등, 긍정적인 모멘텀을 만들어 내야 한다.

레빈에 의하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해동-혼란-재동결"을 통해 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시작의 핵심은 해동의 "끝낸다"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이 기존 방식을 "잊는" 것이다.

Web3라는 모호한 이상에서 VC에 있으며 과연 어떤 것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개념이었다. 조금 더 깊게 찾아보고 싶은 개념.

[22] 내시 균형 / 존 내시

협조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내시 균형은 게임 이론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 게임에 참가한 어떤 참가자가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 해도 기대치가 올라가지 않은 상태, 즉 '균형'에 대해 다룬 이론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두 죄수 모두 계산을 통해  '합리적 선택'을 하면 모두 자백하고 5년 형을 선고받는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이런 경우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전략을 채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참가자 전체의 이득이 최대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논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내시 균형, 죄수의 딜레마 모두 여기까지는 일반적이고 식상한 내용이다. 재밌는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죄수의 딜레마는 단 한 번의 의사 결정으로 참가자의 이득이 결정되는 게임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인간 사회는 협조와 배신을 반복하며, 정치학자인 로버트 액설로드는 이를 반영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전문가 14명을 통해 게임을 진행했다. 룰은 다음과 같다.

  • 참가자는 '협조' , '배신' 카드를 가지고 있으며 신호와 함께 상대에게 한 가지 카드만을 보여준다.
  • (1) 두 사람 모두 배신을 선택하면 10만 원의 상금을 얻고 (2) 두 사람 모두 협조를 선택하면 둘 다 30만원을 상금을 받고 (3) 한 사람만 배신하면 배신자는 50만원, 협조자는 0원을 받는다.

한 페어당 200게임씩 진행했으며, 14명 + 1개의 랜덤 프로그램의 리그전으로 진행되었다. 신기하게도 우승은 심리학 교수 아나톨 래퍼포트가 작성한 가장 간단한 프로그램이 이겼다. 심지어 2회차에 더 많은 프로그램이 참가해도 해당 프로그램이 우승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로직은 2가지다.

  • 처음에는 협조를 낸다.
  •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마지막에 낸 것을 낸다.

즉 처음에는 "좋은 사람" 전략을 하되, 상대방이 배신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사용하며, 우호적인 순간에는 바로 포용하는 전략이다. 물론 현실은 경제적 인센티브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있기에 이 전략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영감을 주는 파트였다. 이런 내용을 좋아한다면 "유전 알고리즘에서 돌연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추천한다.

[23] 권력 거리 /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왜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 확률이 더 높을까?

(1)부기장이 조종하고 기장이 보조하는 경우와 (2)기장이 조종하고 부기장이 보조하는 경우, 어디가 더 사고가 많이 날까? 질문 자체가 식상해서 이미 정답을 알거라 생각한다. 정답은 2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럴까?

이는 앞서 이야기한 악마의 대변인과도 연계된다.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에 의견 표명이 자유롭고 마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항공실은 과연 의견 표명이 자유로울까? 직책의 차이에서 나오는 심리적 저항감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기에 부기장이 보조하는 경우 더 사고가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를 영어로 하도록 개편하였다.

조직 인류학 연구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이런 '상사에게 반론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 강도'를 조사하여 수치화했고 이를 권력거리지수(PDI, Power Distance Index)라고 정의했다. 권력 거리의 보다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각 국가의 제도와 조직에서 권력이 약한 구성원이,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예기하고 받아들이는 정도

권력거리가 높을수록 대표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준법 감시에 대한 문제
  2. 혁신에 관한 문제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의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마지막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고민도 들었다.

  • DAO에서 권력 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 DAO는 일반 조직에 비해 더 나은 조직 모델이 될 수 있을까?
  • 모든 정보가 공개된다면 AI로 조직 내 권력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까?
  • 능력 격차는 권력 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부하직원으로서 리더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이것이 없다면 철인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걸까?

답은 없지만 꾸준히 고민해볼 문제.

[30] 아노미 / 에밀 뒤르켐

업무 방식 개혁 앞에 놓인 무서운 미래

아노미(anomie)는 무연대를 뜻한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저서 <사회분업론>에서 분업이 지나치게 발달한 근대 사회에서는 기능을 통합하는 상호 작용 행위가 결여되어 공통 규범이 생겨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노미에 대해 조금 더 와닿는 해석을 찾는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아노미적 해석을 추천한다.)

<자살론>에서 뒤르켐은 자살을 3가지로 분류하고 '아노미적 자살'이 증가할 것이라 주장했다. 3가지 자살은 다음과 같다.

  1. 이타적 자살(집단본위적 자살): 집단의 압박에 의한 자살
  2. 이기적 자살(자기본위적 자살): 고독감과 초조함으로 인해 개인과 집단의 연대가 약해짐으로 이뤄지는 자살.
  3. 아노미적 자살: 집단과 사회의 규범이 느슨해져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결과, 커져가는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껴 허무감에 빠져 일으키는 자살. (이 부분도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연계 지을 수 있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사회의 아노미화를 막기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는데 그 중 두 가지가 흥미로워 남겨둔다. DAO와 메타버스를 해석할 때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1. 소셜미디어: 철학자 프리드리히 텐부르크는 사회 전체를 덮는 구조가 해체되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구조 단위의 자립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소셜미디어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 회사라는 '종적 커뮤니티'를 대체할 '횡적 커뮤니티': 회사라는 종적 커뮤니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율적으로 자신이 소속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커뮤니티 소속에 대한 의지는 기본 조건이라는 것.

[49] 미래 예측 / 앨런 케이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목차는 별다른 내용은 아니고 다음 문장이 인상 깊어 뽑았다. 위의 문장을 실천하려는 회사, 그리고 대표와 함께한다. 그것만으로도 매일이 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