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2025, Welcome 2026

Goodbye 2025, Welcome 2026

아쉬운 마지막 20대를 보내며.

크립토, 그리고 벤처캐피탈

올해는 팀을 옮기는 과도기였습니다. 정확히는 두 팀의 업무를 병행한 1년이었습니다. 기존 포트폴리오사를 지원하며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는 수비수 역할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딜을 소싱하고 집행하는 공격수 역할의 투자팀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저도 종종 과감한 투자를 꿈꾸는 시기가 있었지만, 적어도 올해는 아니었습니다. 데이터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근래의 밸류에이션은 빈약한 유저 지표 대비 과도하게 높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크립토 프로젝트가 비슷한 상황이지만, 일간 활성 사용자(DAU)가 10,000명 이하(심지어 다계정 포함)이거나 완성 여부조차 모르는 모호한 프로젝트가 밸류에이션 $100M 단위에 육박하는 경우를 보면, 제 기준의 손익비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반대 의견을 내기에 급급했습니다. 트레이딩은 오늘 사서 내일 팔 수 있지만, VC 투자는 베스팅(Vesting)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당장 10배 오르는 내러티브 코인이라도, 1년 뒤 토큰 락업이 해제될 때 프로젝트가 살아있지 않다면 그 숫자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베스팅과 엑싯 시점까지 우상향을 그리며 함께 갈 수 있는 프로젝트, 즉 확실한 현금 흐름이나 규제적/기술적 해자(Moat)를 가진 곳은 너무나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올해 시장은 위로도, 아래로도 다이나믹했습니다. 포트폴리오사와 검토했던 딜 등이 가격적인 펌핑 또는 덤핑 사례를 보며 혼란스러웠습니다. "매크로와 투기 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나?", "저 딜에 대해 반대한 것은 내 역량 부족인가?". 매달마다 생각이 양극단으로 가며 어쩔 때는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기별 회고는 잠깐 쉬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 것도 있고, 후회할 말을 쓸까봐도 있고, 좋은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고 등 다양한 이유가 있네요.

결과론적으로 제 반대 의견들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현금 흐름이 부재한 프로젝트들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이 옳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씁쓸함이 더 큽니다. 시장의 침체는 결국 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마이너스니까요.

이번 해를 보내며 VC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멘탈'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수많은 실패 사례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긍정 회로를 돌려야만 미래를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견된 흉년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헛된 희망을 품었다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심적으로 꽤나 소모적인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 외의 기록

  • 작년과 같이 데이터 업무는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포트폴리오사들이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거나 생태계에 관심이 몰리는 내러티브가 있으면 Dune(온체인 데이터 플랫폼, 블록체인 버전 kaggle 이자 huggingface)에 대시보드를 업로드했고, 팀 2위 / 전체 9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에 다양한 데이터 플랫폼이 나오고 더 이상 "범용 데이터"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기에 더 다양한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팀 1위는 특정 생태계 커뮤니티에서 인게이지 파밍을 했던거라 실질적인 1위 역할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 회사에서 매년 작성하는 1년 회고 및 전망에서 처음으로 제 글을 작성하였고 전반적인 에디팅에 기여했습니다. 올해도 내부 인포그래픽 작업을 외부 디자인팀과 도맡아 하였습니다. 매년 연말에 이걸로 미친듯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그래도 올해는 결과물이 평소보다 더 잘나온 것 같아 좋네요.
SB An | 실시간 투기 시장으로서의 디지털 자산 (link)
  • 회사 내에 다양한 보안 위협이 있었습니다. 특히 (1) 유사 도메인과 (2) 이메일 사칭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고 다양한 세팅과 신고를 통해 다수 이슈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로 유사도메인 홈페이지에서 웹을 그대로 본 떠가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웹사이트 원본 코드에 도메인 체크 스크립트를 심어두어, 이를 그대로 긁어간 피싱 사이트 접속 시 '이 사이트는 가짜입니다'라는 경고창이 뜨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신고와 함께 하루만에 해당 사이트가 사라졌네요.
  • 회사 입사 전부터 운영하여 이제 거의 3년 반 정도 운영한 텔레그램 채널 SB CRYPTO가 구독자 10,000명을 넘었습니다. X 팔로워도 이제 25k를 넘어 26k네요. 다만 수익을 포함하여 많은 것들에 직접적인 얼라인이 안되다보니 아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개인 채널을 통해 포트폴리오사를 서포트하고 많은 개인투자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더 다양한 채널에서 제가 줄 수 있는 가치를 더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올해는 이제 어디서 "크립토 해봤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개인 투자도 노력했습니다. 에어드랍/디파이/매매/선물 등을 통해 벌긴 벌었지만 가장 크게 배운점은 "과도한 레버리지 매매를 하지 말자" 입니다. 물론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것도 선물이지만, 가장 큰 손실을 입힌 것 역시 선물이었습니다. 뒷광고나 레퍼럴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뿌듯하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수익이긴 했습니다만 여기에 투입한 시간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물이네요. 크립토 투자업에 종사하는 만큼 개인적인 감각이 중요하고 그만큼 역량을 많이 기른 한 해이기도 하면서도, 그 시간을 일부를 미래를 위한 개발 스킬셋을 길렀다면...이라는 후회가 조금은 남네요.

지금 그리고 AI

2025년 12월, 저는 지금 모든 집중을 "AI 도구의 활용"에 쏟고 있습니다. 저의 AI 시대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회고에 녹일까 고민하던 찰나에 연말에 고려대학교 블록체인 학회에서 운영하는 매거진 Delphi에 투고를 제안받았고 글에 제 생각을 일부 녹여봤습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AI 시대 인간이 가져야 할 역량이 무엇일까>이었으며, 다음은 도입부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오랫동안 개인의 생산 가치는 그가 쌓아온 지식과 기술의 숙련도라는 해자에 의해 보호받아 왔다. 전문성은 생산성을 담보하는 무기였고, 그 기술적 해자는 타인이 쉽게 넘지 못하는 진입장벽이었다. 무엇을 할 줄 아는가가 곧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대였다. (생략) 그러나 2025년 현재, 지식과 기술의 가치는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과거 전문가들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해법들이 이제는 단 몇 초의 연산이면 출력되는 공공재가 되었다. (생략)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능은 더 이상 희소 자원이 아니다. 결과물을 해석하고 검증하는 펀더멘탈로서의 지식은 여전히 기초 체력처럼 중요하겠지만, 지능의 밀도가 상향 평준화된 세상에서 지식의 양 자체가 권력이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개인의 지식만으로는 더 이상 어떤 우위도 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고문에서 드러났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솔직히 혼란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큽니다. 제가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며 쌓아온 다양한 개발 스킬과 지식의 가치는 점점 빠르게 0에 수렴해가고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느껴집니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아비트라지가 있지만 얼마 안남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내년 1분기까지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현존하는 AI 도구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즉시 구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저의 AI 활용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 내년 이맘때 회고에는 이 리스트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길어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ETHVIZ - 이더리움 및 블록체인 관련 인터랙티브 교육 자료 제작. 개발을 시작하고 매번 가장 관심이 있던 것은 더 좋은 교육 자료 만들기였습니다. 특히나 인터랙티브 웹을 활용한 교육자료는 대학원 시절에 특히나 관심이 많았는데 이제 어느 정도 1인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 (토이프로젝트) 발라트로 스타일 로그라이크 화투 게임 - 결국 AI시대에 살아남는 것은 영상 컨텐츠. 그 중에서도 게임과 스트리밍 산업의 소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업계와 감성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일단 해보면서 배우자" 라는 마인드로 하나씩 제작해보고 있습니다. 회고를 쓰다보니 느꼈는데 제작 일기를 유튜브 등 소셜에 영상으로 남겨야겠네요.
  • 참고로 바이브코딩 관련 유튜브 채널은 만들어뒀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제작한 영상을 올리려고 했는데 음원 저작권 이슈로 음원 제작 중에 있습니다.
  • subinium/full-stack-builder - 바이브코딩 및 AI 생성을 위한 툴 모음.
  • vibecoding from subinium - 개인 AI 작업물 공유용 텔레그램 채널.

마치며

성인 이후 이렇게 혼란스러운 연말은 처음입니다. 매년마다 행보는 꽤 뚜렸해보였고, 저의 선택에 확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제가 무슨 길을 걷고 있는지, 옳은 길을 걷고 있는지 계속 흔들렸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잃고 싶지 않았던 모습은 있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

흔들릴때마다 나눌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나누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면에 지키고 싶은 가치 중 하나는 지킨 한 해였네요.

올해는 21회 기부했다. 대략 2~3주에 1회 정도 기부했네요.

연말이 되어 더 반복하는 상상 중 하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크게 무언가를 잃었을 때를 가정하는 것입니다. 자산이든 건강이든 소중한 무언가를 극단으로 잃었을 때를 상상하는 것이죠. 그리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어떤 것이 우선순위일까, 그간 난 무엇을 놓쳤는가 하나씩 곱씹어보고는 합니다.

다가오는 2026년은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다시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도 후회 없는, 행복한 2026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